안녕하세요
이전 글에 이어서 반고흐에 대해 말하는 두 번째 글입니다.
전에 설명드린대로 이번 편은 그의 화풍과 몇가지 작품들을 예시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따라오시죠 :)
그의 작품과 화풍
전 글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반 고흐의 작품은 그가 가진 강렬한 개성과 감정 표현 덕에
'표현주의' 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데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사용하여
물감을 캔버스 위에 두껍게 쌓아 올려 붓 자국이나 나이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올해 열렸던 그의 전시회를 가보신 분들은 아마
물감을 두텁게 쌓아올려 그림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두터운 질감으로 인해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그의 격렬한 감정, 에너지, 그리고 고뇌를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시로 그의 [붓꽃]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이렇게 붓이 지나간 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 물감이 두텁게 쌓아올려진 자리나 나이프로 누르면서 그려간 흔적들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붓의 방향성에 있습니다.
많이 아시는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거리]의 밤 하늘을 보시면 마치
소용돌이치거나 파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감정의 흐름이나
생명력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방향으로 붓의 흔적이 지나가죠

이번는 예시로 [사이프러스] 작품을 가져왔는데요.
밤하늘의 소용돌이와 파동이 역시나 그림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색채가 매우 강렬하고, 그가 그리는 하늘은 항상 일렁거리듯 표현되죠
여기에는 그가 알코올 중독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흐는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알코올, 압생트라는 술에 중독되어 살았습니다.
그가 프랑스 남부 아를(Arles)에 머무는 동안 압생트를 즐겨 마셨습니다.
압생트는 당시 프랑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독한 술로, 환각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튜욘(Thujone) 성분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녹생 요정(Green Fairy)라고도 불렸었죠.
여기서 일부 이론에서 반 고흐의 그림 중 유난히 노란색이 강렬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황시증(Xanthopsia)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는 증상)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확실하게 증명된 학설은 아닙니다. 그의 편지를 보면 노란색을 희망, 태양, 사랑 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의 상징으로 사용하려는 예술적 의도가 더욱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그가 생애 노란색을 가장 많이 사용한 작품으로는[해바라기]가 있습니다. 다만 해바라기 작품의 이미지를 구할 수가 없어세번째로 노란색이 많이 사용된 [밀밭] 작품을 가져왔습니다.
마치 그림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드는 작품이여서
저도 참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데요.
이 그림만 봐도 그가 어째서 노란색을 희망의 색이라 말했는지
알 수 있을거 같지 않나요?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그는 스스로 귀를 잘랐습니다.
아직까지도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른 정확한 이유는 미술사학자들과 의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하게 인정되는 설명은
격렬한 정신 질환의 발작, 폴 고갱과의 다툼, 그리고 테오의 결혼 소식에 대한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가설이죠.
1. 고갱과의 다툼
고흐는 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에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고, 이에 대한 희망으로 절친한 동료 화가인
풀 고갱(Paul Gauguin)을 초청해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과 예술관이 너무나 달랐고, 공동 생활 내내 극심한 불화에 시달렸습니다.
사건 당일에도 두 사람은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고, 이로 인해 고흐의 정신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해졌습니다.
고갱이 그에게 아를을 떠나겠다고 통보하자, 공동체에 대한 희망과 유일한 친구를 잃는다는 절망감이 고흐를 덮쳤습니다.
고흐는 당시 이미 심각한 정신 질환(조울증, 간질 등 다양한 추정)을 앓고 있었는데,
고갱과의 다춤과 실망감은 그의 정신 상태를 최악으로 몰아갔고, 결국 발작적이고 충동적인 자해 행위로 이어졌죠.
여기에도 많은 증언이 갈리는데요.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의 일부를 잘라내고 그는 이 귀 조각을 포장하여,
아를의 한 사창가 여성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주장도 있고
고갱에게 보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2.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
사건 직전에 고흐는 동생 테오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고흐는 태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테오가 결혼하면 자신에 대한 지원이 끊길 것이라는
경제적, 심리적 불안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신 질환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반 고흐 계속 그를 알아갈수록 알다가도 모르겠는 미스테리한 남성이지 않나요?
그와 관련된 모든게 아직도 미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그가 더 신비로운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죽음도, 그가 생애 했던 행동들도. 모두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가설과 주장일 뿐이죠.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까마귀가 있는 밀밭]

고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들판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입니다. 이 짧은 시기 동안 그는 극한의 불안 속에서도 놀라운 속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린 후 며칠 뒤인 1890년 7월 27일, 이 밀밭 근처에서
자신에게 권총을 쏘았습니다.(일부 설에 따르면, 이 그림을 그릴 때 까마귀를 쫒기 위해
권총을 소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타살의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대체 그는 어째서 이토록 미스테리한 인물일까요?)
고흐의 시신을 검사한 결과, 총알이 빗나갔고 비스듬한 각도로 몸에 박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쓴 총이라면 보통 몸의 중앙에 수평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고흐가 총을 맞은 장소가 그가 그림을 그리던 들판이 아니라, 마을에서 약 1.5Km 떨어진
한 농장의 헛간 근처였던 것도 의문을 더했습니다
이 타살설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많은 미술사학자들과 의료전문가들은 이를 부정합니다.
고흐는 편지를 통해 이전에도 몇 차례 자살 충동과 절망감을 표현했으며, 사망 직전 동생 테오레게 남긴
"슬픔은 영원할 것이다." 라는 말은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과 일관성을 가집니다.
현재까지는 고흐가 자살한 것이라는 기존의 견해가 미술사와 역사학계의 주류 학설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타살설은 고흐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있는 밀밭,
그림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어둡고 격렬한 하늘과 소용돌이치는 듯한 황금빛 밀밭, 그리고 검은색 까마귀 떼는
그의 심리가 극도로 불안정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고흐의 삶에서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그가 느꼈던 고독과 불안을 가장 순수하고
폭발적으로 보여주는 마지막 증거인 셈입니다.
다음편이 반 고흐를 소개하는 마지막 편 입니다.
그가 정신병동에 들어간 후 만나게 된 가젤박사와 얽힌 스토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 모두 11월달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하) (1) | 2025.11.13 |
|---|---|
|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상) (1) | 2025.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