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하)
안녕하세요
드디어 반 고흐의 마지막 글이네요.
이번에는 그가 정신병동에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지나온 삶과 마지막 여정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생 레미 요양원
1889년 5월 8일, 고흐가 생 레미(Saint Remy de Provence)의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한 이후,
(자발적으로 입원한 이유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심각한 정신 발작과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이전 글에서 설명드린 귀 절단 사건이 있죠.)
그의 삶은 짧았지만 엄청난 창작열로 불타올랐습니다.
병세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힘든 시기였음에도
고흐는 그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약 1년 동안 200점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이는 그의 생에 가장 창조적인 시기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때의 주요 작품으로는
[별이 빛나는 밤], [아이리스], [밀레의 씨를 뿌리는 사람을 모사한 작품들] 등
상징적이고 역동적인 걸작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간질 발작으로 고통받았으며, 이로 인해 한 달에 네 차례 이상 발작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물감을 삼켜 음독 자살을 시도한 일도 있었습니다.
동생 테오는 변함없이 그를 지지하고 재정적으로 도왔으며, 고흐는 테오에게 수 많은 편지를 보내 자신의 생각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뻐하며 [꽃이 핀 아몬드 나무]를 그려주었다는건
유명한 일화죠

▶1890년
[유리잔에 담긴 꽃이 만발한 아몬드 가지]
약 1년을 생레미에서 보낸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와즈' 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곳은 그의 정신과 의사이자 화가였던 '폴 가셰 박사' (Dr. Paul Gachet)의 감독 아래 치료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도 고흐는 하루에 한점 이상의 놀라운 속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전의 강렬하고 소용돌이치는 화풍에서 벗어나, 오베르의 밀밭과 풍경을 담은 [가셰 박사의 초상] , [까마귀나 나는 밀밭] 등
비교적 차분하거나 또는 깊은 불안감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1890년
[영원의 문에서]
제목인 영원의 문에서는 단순한 절망을 넘어, 고흐가 이 고통 속에서도 영생, 희망 혹은 신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슬픔이 끝난 후에는 영원한 안식과 평화가 있으리라는 기독교적 믿음을
작품에 투영했습니다.
그는 오베르에 머문지 약 두 달 만인 1890년 7월, 들판에서 스스로 권총을 쏴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미스테리한 사실이 있는데요.
위에 언급되었던 [가셰박사의 초상화] 이 작품과 얽힌 사연이 있다는거 아시나요?
반 고흐의 마지막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작품이며,
미술관 경매 역사상 가장 큰 논란과 미스테리를 남긴 그림 중 하나입니다.
고흐가 동생 테오의 주선으로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오즈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그의 의사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가셰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치료를 받게 됩니다.
가셰 박사 역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했기 때문에, 고흐는 그에게서 단순한 의사가 아닌
진정한 친구이자 형제 같은 존재를 느꼈습니다. 고흐는 테오에게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닮았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고흐는 오베르에 머문 지 한 달 후인 1890년 6월, 가셰 박사의 초상을 단 사흘 만에 완성했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초상화 중 최후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0년
[가셰 박사의 초상화]
도면
고흐는 이 초상화를 '우울한 모습' 으로 보이게 그렸다고 동생에게 언급했습니다.
그림 속 가셰 박사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불안정하고 격렬한 붓 터치는 모델과 화가 모두의
고통스럽고 예민한 정신 상태를 반영합니다.
테이블 위에는 심장병 치료에 쓰이는 약초인 '디기탈리스(Digitalis)' 가 놓여있습니다.
이는 가셰 박사의 직업을 상징하는 동시에, 고흐 본인의 심리적 고통이나 심장병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셰 박사의 상태를 암시하는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이 그림은 종종 고흐 자신의 심리적 자화상으로 간주됩니다.
환자인 고흐가 자신보다 더 아파 보이는 의사를 그림으로써,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과 고독을
의사의 모습에 투영했다고 평가됩니다.
[가셰 박사의 초상화]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하나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또 다른 하나가 세계적인 미스터리의 주인공입니다.
첫번째 버전은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일본의 기업가 사이토 료에이에게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8,250만 달러(약 90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사이토 료에이는 이 작품을 사면서 "내가 죽으면 그림을 함께 화장해 달라"는 호기로운 유언을 남겼으나.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실제 화장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이토가 1996년 사망한 후, 그의 회사가 파산하면서 이 그림은 경매에 다시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해져 현재까지 찾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이 그림은 나치 독일의 압류와 유대인 망명가를 거쳐 최종 소유자에게 넘어갔다가 사라진.
미술계 최대의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설로
사이토 료에이는 자신이 사들인 작품에 엄청난 집착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이 사 들인 그림들이 자신이 죽고 난 이후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걸 극도로 거부했고
때문에 실제로는 화장 당시 그가 자신이 샀던 그림들은 전부 같이 화장했을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떠셨나요.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과 원래 알고 있던 사실들을 비교하면서
찾아내는 재미가 있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예술, 그림과 관련된 스토리는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붓에 남아 기록된다니.
어쩌면 참으로 낭만적인거 같다는 느낌도 드네요.
궁금한 작가나, 화가가 있으시다면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세요
항상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다음 글은 장 미셸 바스키아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1980년대 뉴욕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천재적인 예술가죠.
'검은 피카소'라고 불리며, 짧은 생애 동안 엄청난 족적을 남긴 아티스트 입니다.
현재 DDP에서 그의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가셔도, 보고 나서 읽으셔도 불편함이 없도록
열심히 그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저녁 되세요